본문으로 바로가기

[MBTI 분석심리학] 비합리적 정신기능 ‘직관(N)’ 중 ‘내향직관(Ni)’은 무엇인가?




■ 비합리적 정신 기능 ‘직관(N)’ 중 ‘내향직관(Ni)’은 무엇인가?


  이 유형의 사람에게서는 직관기능이 객체가 아닌 내적인 세계로 향한다. 비록 그 직관기능이 객체의 어떤 가능성을 파악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객관세계에서의 가능성, 즉 어떤 장사가 내년에 잘 될 것이라든가, 어떤 사람의 그림이 장차 잘 팔리게 된다든가 하는 가능성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원시적 요소들이 어떻게 변해 가고 있으며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외향형, 내향형이라고 해서 각 특수 기능이 꼭 한 가지 방향으로만 움직이지는 않으며 언제나 다소 반대되는 경향의 인식이 동반되기 때문에 내향적 직관과 외향적 직관의 경우도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경향이 더 강한가에 따라 형의 외향과 내향을 정하게 된다.


  어쨌든 내향적 직관형에서는 구체적인 현실에서의 가능성보다 정신세계에서의 가능성을 촉지하는 것이 그의 주 기능의 특징이며, 그는 주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종교적 예언가, 이른바 선지자이며 예술가나 시인 가운데서도 발견된다. 원시사회 같으면 혼령의 세계와 교통하며 이를 통하며 환자를 치료하는 샤먼과 같은 형이 될 것이며,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현대 사회의 정신치료가, 정신과의사, 심리학자들 가운데도 이런 형의 치료자가 많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잠들고 있는 시대에 일어나 정신의 위기와 각성을 촉구하는 광야의 예언자이며, 그가 예술가나 시인이면 그의 작품은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초속의 세계를 표현할 것이며, 객관적인 미감각과는 거리가 먼 기괴한 내용에 차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번득이는 진리는 현세를 넘어 무궁한 미래를 가르킬 것이다. 그들은 대개 그 시대의 사람에게는 잘 이해받지 못한다. 그의 말은 불가해하며 전혀 논리성이 없어 합리적인 형의 사람의 눈에는 그가 몽환가이거나 신비주의자로 보일 것이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다. 훨씬 후대에야 그의 사상이 대중적인 이해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이 예술이라든가 종교가라든가 하는 어떤 형식으로 표현 방식을 갖추지 못할 때 그들은 괴팍한 바보, 인정받지 못한 천재 같은 존재가 되어 쉽게 역사에 파묻혀 잊혀지기 쉽다. 그러나 문학 작품 같은 데는 천재적 바보의 상으로 가끔 그 진가가 인정되는 수가 있다. 니체의 저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내향적 직관에 의하여 파악된 집단적 무의식의 원초적 유형들이 잘 표현된 예라고 간주된다.


  외향적 직관형과 마찬가지로 내향적 직관형에서도 감각기능이 가장 억압되어 열등한 상태에 있게 된다. 특히 내향적 직관형에서는 외향적 감각이 가장 미분화된 상태에 있으므로 이른바 ‘현실감각’이 극도로 결여되기 쉽다. 외부적인 사실에 대해서 주의를 집중하고 이것을 충실히 기술하는 노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흔히 객관적 사실을 무시해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유형의 사람이 논문을 쓰거나 강의를 하면 뒤죽박죽이 되어 독자나 학생들의 불평을 사기 쉽다. 그러나 그 독자나 학생이 내향형이라면 그 뒤죽박죽의 말 속에 그래도 깊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질서 정연한 강의보다 이를 더 즐기게 된다.


  내향적 직관형은 ‘귀신 이야기’라든가 심령심리학에 깊은 관심이 있고 그런 체험을 곧잘 하지만 자기의 체험을 정확하게 구체적 예를 들어 재현하기가 어렵다. 그런 사람들의 귀령담은 그래서 신빙성이 적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실을 관찰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실을 장황하게 기술한다든가 중요한 대목을 빠뜨린다든가 해서 그들이 겪은 것과는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고와 감정 같은 판단기능이 비교적 약화되어 있으므로 자기의 경험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곤란을 느낀다. 그들은 무슨 ‘냄새’를 맡는다. 가령 커다란 위기가 닥쳐오리란 것을 즉시 엘가 된다. 그러나 왜 그렇게 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가들은 그들이 인식한 것을 고할 뿐이다. 그것을 듣는 사람은 어리둥절해지거나 허튼소리라고 화를 낸다. 훨씬 뒤에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물론 누가 직관형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감을 말한다고 모두 분화된 직관기능이라 할 수 없다. 모든 점쟁이가 직관형이 아닌 것 같이 “내 꿈은 잘 맞는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꼭 직관형인 것도 아니다. 또한 내향적 직관형이라도 너무 자기의 직관기능을 맹신하면 무의식적인 감각기능을 지나치게 소홀히 하여, 거꾸로 이것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때 건전한 직관기능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내향적 직관형이 지나치게 내향적 직관에 사로잡혀서 무의식적인 기능을 돌보지 않으면 열등한 외향적 감각기능은 적절한 보상을 못하고, 의식의 태도와는 대립되는 경향을 취해서 강박적으로 의식을 자극하여 여러 가지 불쾌한 증상을 나타내게 된다. 그는 쉽게 충동에 사로잡히며 강박적으로 객체적 감각에 구속된다. 그래서 의식의 직관적 태도를 훼방하게 된다. 이 형에서 흔히 보는 신경증은 강박신경증으로 건강염려 증상, 감관의 과민 상태, 혹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강박적인 속박 등의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이 형의 사람들의 도덕성에 대하여 융은 감각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들에게서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도독성을 보기가 어렵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도덕적인 문제는 내향적 직관형의 판단을 주재하는 사고나 감정 기능이 어느 만큼 그들의 주 기능인 직관 기능을 돕고 함께 작용하는가에 달렸다. 이런 기능이 전혀 억압되어 활동하지 않을 때 이 형의 사람에게는 도덕적인 문제란 이해 불가능하거나 심지어 부조리라고 생각되며, 그는 오직 지각한 것이 어떤 것인가에만 주의를 집중한다. 그러나 판단기능이 살아 있으면 그는 도덕적인 문제를 의식하게 되는데 그가 직관적으로 인식한 것에 대하여 “그것이 나와 이 세계에 무슨 뜻이 있는가”, “나와 세계에 그 인식으로부터 어떤 과제와 의무가 부여될 것인가” 하는 물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그가 생각하는 것은 그가 인식한 관조의 여러 가지 미적인 가능성이기보다 그것이 지닌 도덕적인 작용의 가능성이라는 것에 내향적 직관형의 특징이 있다. 그가 한 인간, 한 인간 전체로서 그의 환영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 그 환영이 그저 관조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또한 주체의 삶이 되고자 하는 것임을 그는 어렴풋이나마 그 직관적 판단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서 “그는 그의 환영을 그 자신의 생 속에서 개선할 의무를 느낀다.” 그의 도덕적인 노력은 주로 그의 환영에 의거하므로 일방적인 것이 된다. “그는 그 자신과 그의 생을 상징화한다. 현상이 지닌 내적인, 영원한 의미에 적응하지만 현재의 구체적인 현실에는 적응하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그 도덕성의 현실적 영향력이 적어지고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없는 존재가 되기 쉽다고 융은 말하고 있다.




출처 : 분석심리학 pp.191-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