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분석심리학] 비합리적 정신기능 '감각(S)'이란 무엇인가?
■ 비합리적 정신 기능 ‘감각(S)’이란 무엇인가?
감각이란 물리적 자극이 인식을 매개하는 심리기능이다. 지각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감정과는 순수한 의미에서 별개의 독립된 기능이다. 다만 감정과 감각이 섞여서 감정적 색조 또는 정감이나 정동으로 나타날 수 있음은 이미 말하였다. 감각은 사고나 감정처럼 이성의 법칙을 통한 판단이 아니다. 그런 뜻에서 비합리적 기능이다.
감관적 구체적 감각과 추상적 감각을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구체적 감각은 순수하게 나타나지 않고 늘 상상, 감정, 사고와 섞여 나타난다. 추상적 감각은 이렇게 섞이지 않고, 그 자체의 원리를 좇아서 지각하는 것인데 미적 감각이라 부르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가령 여기 꽃 한송이가 있다. 구체적 감각은 꽃이 주는 감각적 자극뿐 아니라 그 꽃을 봄으로써 일어난 쾌, 불쾌의 감정, 상상, 그 꽃이 무슨 과에 속하는가 하는 등의 생각, 꽃의 빛깔뿐 아니라 줄거리나 잎사귀의 모양, 냄새 등이며, 다시금 이런 여러 가지 지각을 통해서 일어나는 생각, 느낌 등이 모두 감각과정에 섞이게 된다. 그러나 추상적 감각이라면 이런 혼합이 배제된 그 꽃의 타는 듯한 붉은 빛깔만이 의식의 내용이 될 것이다. 이런 추상적 감각은 예술가에서 볼 수 있는데, 미적 감각태도를 의지에 의하여 키워 나감으로써 감각기능을 그런 방향으로 분화시킨 것이다. 구체적 감각은 여기에 비하면 하나의 반응이고 의지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런 뜻에서 감각의 근원적 형태는 추상적 감각이 아니고 구체적 감각이다.
“감각은 어린이와 원시인의 가장 특징적인 본질을 이룬다. 최소한 이들에게 감각은 반드시 직관을 능가한다고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사고나 감정을 넘어서는 기능이다.”
융은 감각과 직관을 두 개의 서로 상호보상하는 대극으로 본다. 감각이 의식적 지각이라면 직관은 무의식적 지각이라고 그는 말한다. 개체발생학적으로나 계통발생학적으로 사고와 감정은 감각에서 나온 것이며, 직관이 그 대극인 이상 또한 직관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융의 주장이다.
우리나라 말에는 감각적인 표현이 많이 있다. ‘느낌’이니 ‘생각’이니 하는 말도 사실상 엄밀한 뜻에서 ‘감정’과 ‘사고’와 같은 말이 아니다. ‘느낀다’ 하는 말 속에 직관적 지각이라는 뜻이 들어 있고,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말 가운데 상대방의 느낌에 대한 물음이 함께 포함된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감정을 물을 때 영어식으로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느낍니까?” 하고 묻는 것은 어딘지 생소하게 들린다. 예를 들자면 많지만 맛, 냄새 같은 것도 순수한 객관적 지각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적 혹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원용되고 때로는 직관적 파악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어떤 현상 뒤에 좋지 못한 부정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눈치를 발견하는 것은 직관인데, 이를 우리는 “어딘가 구린내가 난다”고 표현한다. 물론 이 문제는 언어학적으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한자를 표현 수단으로 같이 쓰던 상류지식게층이 아닌 서민 사이에서 자라온 우리말의 표현은 유형론적으로 보아서 고태적이며, 이른바 구체적 감각 또는 구체적 기능의 특징을 나타낸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정상적인 감각은 상대적이어서 자극의 정도에 어울리지만 병적인 감각은 비정상적으로 약하거나 강하다. 비정상적인 감각의 억제는 다른 기능이 이보다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며, 감각의 비정상적인 강화는 감각이 다른 기능과 비정상적으로 섞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분화된 감정이나 사고기능과 섞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뒤섞인 다른 기능을 가려내면 한 기능의 과장은 사라진다. 융은 이런 타 기능의 혼합으로 인한 과장의 예를 프로이트의 노이로제론에서 발견한다. 이 경우는 성적 감각에 많은 다른 기능이 융합되어 다른 기능을 강하게 성욕주의화하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의 총체적인 생애 대한 태도가 감각 원리에 의해서 방향지어질 때 그는 감각형에 속한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각기능에도 외향적 감각과 내향적 감각이 있다. 감각이란 물론 외부의 물리적인 자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이상, 감각이 객체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객체와 외부자극에 의해서 감각 작용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내향적 입장에서는 이 과정이 현저히 변한다. “지각되는 객체 이외에 지각하는 주체가 있고, 이 주체는 객관적 자극에다 그의 주관적 소질을 부여한다.” 내향적 감각의 예는 예술 작품에서 볼 수 있다. 똑같은 풍경을 놓고 그렸는데도 사람마다 그림이 다르다. 예술가는 객체가 발하는 감관적 자극을 그대로 충실히 캔버스에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요소에 의해서 달라진 주관적 감각을 표현한다. “감각의 주관적인 요소는 ‘하나의 무의식적 소인으로서 감관적 지각’을 그 일어남과 동시에 변화시키고 그것에서 순수한 객체적 간섭을 제거하는 것이다.” 내향적 감각에서는 감각이 일차적으로 주로 주체에 관련되며 객체와의 관련성은 이차적이다.
외향적 감각에서 감각은 주로 객체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리고 가장 강한 감각을 야기하는 객체들이 이 형의 사람의 심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형의 사람은 객체에 대하여 감각적으로 매여 있게 된다. “그의 가치기준은 오직 객관적인 성질에 의하여 규정된 감각의 강도이다.” 이성의 법칙에 맞는가 안 맞는가는 상관하지 않는다. 또한 외향적 감각형에서는 구체적인, 감관적으로 지각되는 객체나 과정이 그의 감각기능을 움직이는 동시에, 이렇게 해서 일어나는 감각은 누구나 어디서나 그리고 어느 때나 구체적으로 그렇게 느낄 만한 감각이다. 그 사람이 지침으로 삼는 것은 순전히 감각될 만한 사실성이다. 외향적 감각형에서는 다른 기능들도 모두 다소간 억압되어 미숙한 상태에 있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직관이 가장 미분화된 상태에 있게 된다.
내향적 감각에서 지각되는 것은 순수한 객체상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관적 감각은 물리적 세계의 표면보다도 그 뒷면을 파악한다. 그것은 객체의 현실을 결정적인 것으로서 감각하지 않고 주관적인 요소의 현실, 즉 원초적 상들을 감각하며, 이 상들은 총체적으로 하나의 정신적인 영상의 세계를 표현한다.” 이들은 마치 진리를 말로써 고하는 철인이 아니라 진리를 그림과 소리와 형상화를 통하여 재현하는 사람들이다. 융은 말한다. “내향적 감각은 객체가 재생하는 상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객체를 태곳적, 그리고 미래를 향한 주관적 체험의 침전물로 덧입힌 상을 매개한다. 이를 통하여 단순한 감각적 인상은 풍부한 예감의 깊이로 발전한다. 이에 반하여 외향적 감각은 현시적인, 뚜렷이 밖에 나타나는 사물의 존재를 파악한다.”
출처 : 분석심리학 pp.17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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