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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분석심리학] 합리적 정신기능 ‘사고(T)’ 중 ‘내향사고(Ti)’는 무엇인가?




■ 합리적 정신 기능 ‘사고(T)’ 중 ‘내향사고(Ti)’는 무엇인가?


  지적인 판단이 어느 다른 것보다도 중요한 유형임은 전자와 같으나 이 형의 인간의 사고는 객관적 사실보다도 이념이나 관념에 영향을 받는다.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사실에 대해서 ‘내가’, 즉 주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향적 사고형이 즐겨 관여하는 분야는 철학이다. 다윈이 외향적 사고형이라면 칸트는 전형적인 내향적 사고형이라 할 수 있다. 과학자에게서도 내향적 사고형을 볼 수 있다. 이들도 실험이나 통계적인 방법을 쓰는 수가 있으나, 이들은 언제나 그 방법을 통한 객관적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이러한 방법을 너무 지나치게 믿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판단상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연구 방법이 지니고 있는 한계점을 거론한다. 그는 언제나 기본적인 개념으로 돌아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이 개념을 무슨 뜻으로 쓰고 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예술사를 공부하는 외향적 사고형은 어떤 작품과 비슷한 작품이 어느 연대에서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를 증명하고자 하고 예술가에 관한 여러 가지 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연결하고자 한다. 반면 내향적 사고형은 “먼저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지나가지 않으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향적 사고형도 훈련에 의해서 객관적 사실을 충실히 기술하고 그 연관성을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주관적인 관념이고 객관적 사실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외향적 사고가 백과사전적인 풍성한 사실의 축적과 그 객관적 관련성에 대한 관심을 통하여 지식의 확장에 능하다면, 내향적 사고는 하나하나의 관념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하여 지식의 심화에 이바지한다.


  외향형의 입장에서 보면 내향적 사고형의 판단은 냉철하면서도 완고해 보이고 때로는 제멋대로라는 인상을 받는다. 객관을 넘어서서 항상 주관의 우위성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내향적 사고형은 외향적 사고형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현실에 부응하는 가치관을 나타내는 데 반하여 이념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결코 범용한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다. 아무리 그 생각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위험하다거나 선동적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그 때문에 생각하지 못할 일은 없다. 그래서 그는 외향형으로부터는 ‘이상론자’나 ‘위험한 사상의 소유자’라고 불리기 쉽다. 그러나 사고에 있어서 모험적인 그도 일단 그의 생각이 외부 현실에 반영되면 아주 불안해진다. 또한 자기 생각을 세사엥 실현할 때도 차근차근 남에게 설명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둔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화부터 낸다. 이것은 그가 내향성답게 광고를 싫어하고 실제적인 능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이념을 추구하는 데 끈질기고 집요하여 남의 영향을 받지 않으나 명예욕 많은 부인의 희생이 되기 쉽다. 부인이 객관세계에 대한 그의 무비판적인 경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용하여 남편을 위대한 학자로 만들려 할 때, 그가 이런 명예욕에 편승하여 맹목적으로 주관적 사고에만 치우치면 객관세계의 세찬 반발을 받게 되고 그는 더욱 자기의 탑 속에 틀어박혀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독백을 계속하기 쉽다.


  그는 통속적인 말로 ‘창백한 수재형’,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 또는 ‘냉정하다’라는 말을 들을 법한 사람이거나, 한편 책만 알고 어린애 같은 마음을 지닌 노총각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무뚝뚝하고 거먼하고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 같지만, 그를 잘 알면 알수록 그에게도 다정한 데가 있고 인정이 많다는 평을 하게 된다.


  내향적 사고형은 선생으로서는 좋은 선생이라는 말을 못 듣는 것이 보통이다. 학생의 심리를 잘 모르기도 하고 자기가 아는 것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데도 서투르다. 더욱이 주관적인 평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객관적 사실의 전달은 이 형의 사람에게 전혀 보람을 주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것을 가르칠 때 이 형의 사람은 매우 피곤해진다.


  내향적 사고에 일방적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면 사고를 통한 판단은 경화되고 완고해진다. 그의 말은 글자 그대로 주관적인 것이 되고 남의 말은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말만 말이라고 하게 된다. 그가 하는 말을 보면 그 가운데 깊은 뜻이 있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말은 남을 이해시킬 만한 설명력이 없고 자기의 이념을 반영할 자료를 갖지 못한다. 밖으로부터의 영향을 거절하고 안으로부터의 영향에 사로잡혀 주체적 진실을 자기의 인격과 혼동해 버린다. 마치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리다”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반면에 객관적 표현력의 결핍은 예민한 감정으로 대치된다. 그는 마치 상처 입은 늑대같이 밖에서 오는 비판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몹시 감정이 상하게 되고 비판을 용납하지 않게 되면서 차차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고립하게 된다. 그는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한 철인 같은 존재가 된다. 이런 사람이 논물을 쓰면 문헌이나 주를 거의 무시하고 비록 그것을 적는다 하더라도 잡지의 권, 호, 페이지, 연대, 책의 출판사명, 출간지명 등 외향형이 중요시하는 이른바 체재를 완전히 무시하고, 서론과 고찰과 결론 등 장과 절이 구별 없는 한 편의 수필처럼 쓰게 된다.


  물론 내향적 사고형에서는 열등한 기능의 하나인 외향적 사고와 함께 외향적 감각기능이 의식의 내향성을 대상하게 되므로, 이때에는 오히려 글의 객관적인 체재에 관해서 지나치게 신경을 써서 거의 강박적으로 형식에 매달리고 외향적 사고인 객관적 증명을 기도하여 이런 경향이 외향적 사고형보다도 더욱 심해진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외향형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대체로 주 기능과 열등기능의 과보상은 겉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 듯 보이나, 열등기능의 과보상은 늘 강박적이고 완전 무결성을 지향하여 다소 경화된 느낌을 주지만 주 기능의 행사는 극히 자유스러워서 오히려 열등기능의 과보상의 경우보다 주 기능을 적당히 활용하여 빈틈이 많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외향적 사고형의 외향적 사고와 내향적 사고형의 과보상된 열등한 외향적 사고 간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열등기능의 특징은 그 개체로 하여금 특히 신경을 건드리고 신경을 쓰게 하는 데 있다.


  내향적 사고형에서 무엇보다도 억제되는 것은 감정기능이다. 이 점에서는 외향적 사고형과 같다. 두 형이 다 주로 지적인 판단에 의거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겉으로는 이지적이나 무의식의 깊은 곳에 강한 신의의 정과 열정이 숨어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내향적 사고형의 감정기능은 외향적 사고형의 감정이 내향적인 경향을 띠는 데 반해서 외향적인 경향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폰 프란츠는 오스트리아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예로 들어 재미있게 이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릴케가 쓴 글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것이 너에게 무슨 상관이냐?” 이것은 사랑을 위한 사랑이다. 감정은 객체로 흐르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이기적인 사랑,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폰 프란츠는 말한다. 이런 감정은 극히 강한 영향을 주위에 끼친다. 이것은 극단적인 내향적 감정인데 외향적 사고형의 무의식에서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다. 내향적 사고형에서의 감정기능의 특징을 릴케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것은 너의 일이다. 너의 일이 되도록 하겠다”라는 말로 표현될 것이다. 이렇게 객체로 향하는 감정, 즉 외향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열등기능으로서의 감정은 흑백판단을 뚜렷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하고 사랑과 미움이 뚜렷하다. 그래서 싫은 사람은 덮어놓고 싫고 좋은 사람은 덮어놓고 좋아하는 약간 맹목적인 경향이 생긴다. 분화된 감정기능은 감정형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흑백판단이 아니고 좋은 면과 결점을 함께 볼 줄 아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감정형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흑백으로 갈라지지 않고 회색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흑도 없고 절대적인 백도 없다. 물론 이런 관점을 반드시 기회주의라고 탓할 수는 없다.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는 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열등한 감정기능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 기능이 주 기능에 비해 서서히 작용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모든 열등기능의 특징이기도 하다. “열등기능은 저는 다리와 같다.” 마치 아침에 기분 나쁜 이야기를 듣고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밤에 잠들 무렵에야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불쾌감이나 증오감과 같은 것이다. 이 조류같이 밀려드는 무의식의 감정은 그의 의식을 휘덮고 산산조각을 내서 그로 하여금 잠을 못 이루게 하며 “내가 왜 그때 즉시 뭐라고 항변하지 않았던가” 하고 후회하게 한다. “내향적 사고형의 열등한 감정은 화산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용암과 비교될 수 있다. 그것은 한 시간에 5미터씩밖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내향적 사고형의 열등한 감정기능은 분화된 감정에서 볼 수 있는 식별력이 없으므로 맹목적이고 전혀 계산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형의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면 거의 비굴할 정도의 헌신적인 사랑을 하며, 그 감정은 무척 원시적이다. 이 형의 열등한 감정기능은 폰 프란츠의 표현을 빌리면 “대체로 마치 암사자가 갓난아기를 데리고 노는 것과 같다.”


  



출처 : 분석심리학 pp.167-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