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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분석심리학] 외향형(E)의 의식의 태도, 무의식의 태도




■ 외향형(E)의 의식의 일반적 태도


  앞서 말한 것처럼 중요한 결정이나 행동의 대부분이 주체의 의견에 의하지 않고 객관적인 상황에 의해서 좌우될 때 이를 외향적 태도라고 하고, 이런 외향적 태도가 습성화되어 그의 생활의 일정한 특징을 이루면 그를 외향형이라 부른다. 누구나 살아 나가자면 외계가 제공해 주는 자료들에 따라서 자기 태도를 결정하지만 그 결정하는 양식이나 동기가 다르다.


  외향형은 늘 객체에 맞추고 객체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판단해 가는 경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어떤 사람의 생각, 느낌, 행동의 방법, 즉 사는 법이 좋든 나쁘든 객관적인 사정이나 객관적 상황에서 오는 여러 가지 요구에 직접 부합되는 것이면 그 인간은 외향적이다. 물론 외향형이라고 해서 주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관보다는 객체에서 의식의 태도를 결정하는 힘이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외계를 향한다. 내적인 것은 외부의 요구에 의해서 눌린다.


  다소 갈등이 있어도 언제나 최후에는 객관적인 조건에 알맞은 결정을 내린다. 그의 관심과 주의력은 객관적인 사물이나 다른 사람들에 집중된다. 그의 행동은 또한 객관적인 사물이나 다른 사람이 그에게 주는 영향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는 곧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먼 미래보다 현재의 가장 가까운 주변의 사건들을 추구한다.


  도덕적인 행동 기준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요구, 즉 일반적인 도덕관과 완전히 일치한다. 일반적인 도덕관이 바뀌면 자기의 행동 기준도 바뀐다. 그 때문에 큰 갈등을 겪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내향형으로부터 곧잘 기회주의자, 지조가 없는 사람, 뼈대가 없다, 비겁하다 등 비난을 받기 쉽다. 물론 외향형은 그렇게 말하는 내향형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집불통’, ‘시류를 외면하는 보수주의’, ‘이기주의자’, ‘독선가’라고 응수하기 마련이다.


  외향형의 이와 같은 객체 위주의 태도를 과연 훌륭한 적응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융은 반문한다. 재빠르게 현실에 뛰어들어 그것과 호흡을 같이하기 때문에, 현실에 뛰어들지 못하고 원칙이니 이상이니를 내세워 현실 비판만 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적응능력이 강하다고 할 법하다.


  그러나 융은 말한다.


  “그는 순응은 하지만 적응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응이란, 직접적인 주변의 그때그때의 조건에 아무 마찰 없이 맞추어 가는 것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적응은 지역적, 시대적 조건보다 더 보편적인 법을 관조하기를 요구한다.”


  보다 높은 견지에서 볼 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이 반드시 어떤 경우에나 정상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 비정상적이면 외향형은 순응 태도로 인해 곧바로 환경의 비정상성에 부합되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는 사회와 함께 보편적인 생명법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다가 똑같이 멸망하게 된다. 그는 정확하게 사회에 순응하나 또한 이와 꼭 같이 정확하게 사회와 더불여 파멸한다. 여기에 외향형의 제약이 있다고 융은 말한다.


  외향형은 객관적인 가능성을 추구하여 당장 그때그때 장래성이 있는 직업을 택하거나, 당장 주위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을 한다. 그는 주위의 기대가 있는한 변혁을 과감하게 실천하지만, 그것이 주위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면 변혁을 피한다. 그는 명랑하고 사교적이고 자유스럽게 주위 환경에 작용하고, 주변으로부터의 작용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외향형은 외향적인 태도가 일방적으로 극단화될 때 자기의 주체를 소홀히 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주관적인 사실로서 가장 소홀히 여겨지는 것은 신체이다. 이것은 그에게는 외적이고 객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외향적 태도가 너무 지나치면 신체가 고통을 받는데, 대개 외향형은 이상한 신체 감각이 나타나야 비로소 여기에 관심을 가진다.


  외향형의 성격상 모든 것을 구체적, 객관적으로 보는 버릇이 있으므로 신체 증상도 그렇게 본다. 다른 한편 외향형은 지나치게 객체에 순응하는 나머지 객체에 흡수되어 모든 주관적인 것을 잃어버릴 위험을 갖는다. 주관적인 것은 의식에서 배제되어 무의식에 억압되고 뒤에 분방한 환상작용으로 의식을 괴롭히게 된다. 평소에는 아주 활달하고 적극적이고 남자답다고 하는 사람이 건강에 대하여 병적으로 염려하기 시작하고 신체기관의 조그만 이상에도 놀라는가 하면 그 사람답지 않게 암이 아닐까 하는 공상에 사로잡히는 경우, 우리는 그의 외향적인 태도가 너무 극도에 이르러 이제 다른 것으로 보충되지 않으면 안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체적 이상은 흔히 일방적 외향적 태도의 무의식적 보상작용의 하나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명성을 올린 가수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높은 기대를 맞추려 하다가 갑자기 높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 증세를 나타낸다든지, 자수성가하여 성공일로를 걷던 한 기업가가 고산병 같은 호흡곤란 증상을 나타낸다든지, 무제한으로 미화하여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여자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문제가 많은 성격의 여자와 결혼하려던 남자가 갑자기 인후경련을 일으켜 하루에 우유 두 컵 밖에 못 마시게 되어, 결국 결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다든가 하는 예는 융이 제시한 예들인데, 이러한 증상은 결국 그 개체로 하여금 외향적인 태도를 정지시키고 주체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고,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위의 예시들처럼 흔히 그가 처하고 있는 상황을 무척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융은 외향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신경증은 히스테리성 노이로제라고 말한다. 히스테리아의 특징은 항상 남의 관심을 끌고 주변에 인생을 주려는 것인데 이것은 정상적인 외향적 태도가 과장된 것이다. 또한 히스테리성 성격의 다른 특징은 극도로 항징된 환상작용으로, 이 때문에 히스테레 환자는 곧잘 거짓말쟁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는데 이는 의식의 외향적 태도를 보상하는 무의식으로부터의 반응 때문이다.



■ 외향형(E)의 무의식의 태도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주관적인 것을 아주 무시하고, 객관적인 상황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님을 말할 것도 없다. 건전한 외향형에서는 항상 적당한 보상을 내향적인 작업을 통해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장기인 객관적 현실에 대한 참여가 건설적이고 유익한 방향으로 실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외향적인 태도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과장되면 외향적이지 않은 것은 모두 의식에서 배제되어 무의식에 억압되고, 이것이 오랫동안 지나치게 지속되면 의식의 태도와는 다른 여러 가지 특이한 무의식적인 경향이 생기게 되고, 뒤에는 이것이 의식을 자극하게 된다.


  이런 경우 무의식은 극단적인 내향적 경향을 띠는 것이 보통인데, 무의식에 억압된 내향적 경향은 분화 발달될 기회를 잃게 되므로 억압이 오래도록 계속되고 의식에서 그것이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막으면 막을수록 미분화된 원시적 고태적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그런 내향적 경향은 무의식의 가장 밑바닥의 본능적인 충동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건전한 주체적 판단이나 이에 입각한 행동이 아니고 유아적인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경향과 같은 미분화된 내향성을 강하게 띠게 되는 것이다. “의식적인 외향적 태도가 완전하면 완전할수록 무의식적인 태도는 유아적이고 고태적이다.” 극도의 객체 지향성은 결과적으로 미구에 극도의 주관적 견해나 욕망에 의하여 지배당할 바탕을 마련하게 된다. 무의식의 경향은 단순히 어린애 같은 유치함을 넘어서는 무자비한 이기주의와, 프로이트가 말하는 근친혼에의 욕망에까지 번지게 된다. 그런 뜻에서 고태적이다.


  외향형은 현재와 외적 현실에 집착하는 나머지 과거와 역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뭐라고 했는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박한다.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은 상당히 이와 같은 외향성을 띤 사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의식적으로 끊어 버린 과거와 역사는 의식에서는 없어지지만, 무의식에서 연명을 하여 그 개체를 포함한 전 인류의 과거가 하나의 요청으로서 의식의 현재주의에 대립하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서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전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역사적 요소는 그 현명한 운영을 절실히 요청한다. ‘지금까지의 것’은 어떻게든 ‘새로운 것’ 가운데서 발언될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체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객체에의 전적인 동화는 억압된 소수자인 지금까지의 것‘ - ’처음부터 있어 온 것‘ - 원초적인 것의 항의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무의식은 오직 욕구일 뿐이라고 프로이트가 주장한 것은 사실 극단적인 외향형의 무의식의 경향에 부합된다고 융은 말한다.


  이렇게 외향형의 의식적 태도에 상반되는 무의식적인 경향이 적절한 대상의 정도를 넘어서서 의식에 대하여 거의 적대적인 반작용을 하기 시작하면, 외향형 자신도 전혀 깨닫지 못한 가운데 의식의 태도와는 모순된 무의식적 경향이 의식 표면에 나타나 그의 행위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객관적 규준에 의하여 공정무사하게 사무를 처리하며 항상 남과 사회를 위하여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때때로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해치우려는 끝없는 아집과 횡포를 부려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그 사람의 어느 것이 의식적이고 어느 것이 무의식적 태도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누가 무슨 유형에 속하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의식의 외향적 태도가 무의식의 열등한 내향적 태도에 어떻게 동화되어 가는가를 융은 한 출판사 주인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사람은 20년 동안 남의 점원 노릇을 하며 고된 일을 해오다가 독립하여 장래가 유망한 회사의 경영주가 되었고, 그의 회사는 점점 번창하여 이 사람의 사적인 관심은 전적으로 사업을 위해서 희생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회사의 확장과 경영이라는 외부적 작업에 의해서 억눌린 내적인 관심은 무의식에서 대상적으로 강해져서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 점차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에 그는 그림을 좋아했는데 그는 이것을 자기 사업에 도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림의 취미를 따로 키워 가지 않고, 그가 내놓은 책들은 ‘예술적’인 장정을 꿈꾸게 되어, 이 꿈을 실현하려고 그의 유치한 취미에 맞게 책의 모양을 내기 시작했는데 그만 수년 후에 그 때문에 회사가 파산하게 되었다. 이러한 예는 똑같은 경우는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 현대의 많은 기업가들에게서도 발견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융은 이 예를 통해서 외향형의 객관 위주의 태도가 극도에 다다를 때는 무의식의 주관적인 기호나 관심이 그대로 의식의 태도에 흡수되어, 그것이 마치 객관적인 목적에 이용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외향형에서는 객관적인 목적을 만족시키기에는 의식의 내향적 경향이 열등한 상태에 있으므로 대개 그러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열등 기능이 자기도 모르게 우월기능의 탈을 쓰고 우월기능처럼 행세하게 되는 경우인데, 이와 같은 혼동은 자아가 무의식의 경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것을 모르고 있을 때 잘 생기는 현상이다.


  의식의 외향적 태도가 극도로 일방적일 때 무의식의 태도가 하나의 대극을 이루어 의식의 억압의 정도에 따라 차차 그 세력을 강화하여 의식에 영향을 줄 때, 앞에서 말한 예처럼 자아의 무의식과의 동화현상이 일어나거니와, 무의식의 경향이 의식을 완전히 지배하여 의식의 기능을 마비시키면 여러 가지 신경증적 증상을 나타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분방한 욕망과 허무함 사이를 헤매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유치하고 원시적인 경향을 지나치게 억압하면 노이로제 말고도 마약 남용, 알코올 중독을 일으키게 되고, 때로는 갈등 속에서 자살하는 경우도 생긴다. 융은 이러한 요소의 억압이 어쩔 수 없이 문화의 이름으로 실시되는 경우가 있음을 또한 지적하고 있다.



출처 : 분석심리학 pp.150-155